[영화 리뷰] 이사(1993)

소마이 신지 감독의 1993년 작, 이사. 이수 아트나인에서 리마스터링 재개봉 해줘서 볼 수 있었다.

‘이사’를 보고 난 뒤 소마이 신지는 내가 넘어서고 싶었던 단 한명의 감독이 되었다.

가족 영화의 거장인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 말이다. 영화의 '영'자도 모르는 무지렁이인 내가 봐도 명작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영화였다.  4K 리마스터링 덕분에 선명하면서도 90년대의 노스텔지아를 충분히 불러일으키는 영상을 볼 수 있었다.

영화의 스토리는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인 '두 개의 집'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, 이혼을 결정한 부모가 두 개의 집으로 나누어 살게 되면서 그들의 자녀인 어린 소녀가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혼란과 또 그것들을 통해서 한 아이가 성장하게 되는 모습을 매우 개성있게 그려내고 있다.

80년대 일본의 버블 경제가 붕괴한 뒤 맞게 되는 90년대 일본인들의 좌절과 심리 상태를 부부의 갈등으로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으며, 한 아이의 성장을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롱테이크 씬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.

인상 깊은 부분은 영화 후반부의 주인공 소녀가 겪게 되는 기묘한(?) 스토리인데, 이 장면에서 마치 아이가 꾸는 꿈을 형상화한건가? 싶었다. 소녀가 밤새 산을 헤매다가 바다에서 불에 타는 배를 보기도 하고, 자기 자신처럼 보이는 소녀를 만나서 안아주는 장면도 나온다. 다시 생각해보니 이러한 씬은 한 아이의 내적 성장을 상징적으로 그려내려는 감독의 의도인 것 처럼 보인다.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의 이혼은 마치 모든 세계가 무너지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이다. 나도 경험해봤기 때문에 잘 안다. 그 순간부터 아이는 준비가 되어있든 아니든 강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. 과거의 나와 이별하게 될 수 밖에 없다. 

렌코는 “기억을 잃어버리는 게 무섭지 않냐”고 묻는다.
노신사는 “간직해야 할 기억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면 충분하다”

좋아하는 사람과 작별하는 것, 행복했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, 모두 두려운 일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면 그런 것들을 견뎌낼 조금의 위안이나마 생기게 된다. 인간이란 원래 그것이 불행했건 행복했건 상관없이 과거의 기억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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